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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쓸수록 커지던 회의감에 대해

좋아서 쓰는 도구인데, 쓰면 쓸수록 회의감이 커졌다.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는 한 인터뷰를 보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됐다.

AI 덕분에 공부가 많이 빨라졌다. 예전 같으면 며칠을 붙잡고 있었을 내용을 하루 만에 훑고, 막히는 데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본다. 나는 오래 공부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 이건 분명히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쓰면 쓸수록 반대쪽 감정이 같이 자랐다. 박탈감에 가까운 거였다. 내가 AI보다 잘하는 게 뭐지, 그럼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도 앞뒤가 안 맞는 감정이라 한동안 마음에 걸려 있었다. 그러다 EO Korea 채널에 2026년 8월 24일 올라온 크리스 피치(Chris Piech) 교수 인터뷰를 보게 됐다. 스탠퍼드에서 프로그래밍 입문과 AI를 위한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이 감정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답을 얻었다. 인터뷰가 세 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있어서, 이 글도 그 순서를 따라가 보려 한다.

Lesson 1. 사람과 AI의 차이는 동기부여였다

교수는 6년째 온라인 프로그래밍 입문 수업 Code in Place를 운영하고 있다. 수강생이 1만 7천 명쯤인데 선생님이 1천 명이 넘어서, 학생 열 명에 선생님 한 명꼴이다. 본인은 세상에서 선생님이 가장 많은 수업이라고 소개했다.

그 6년 동안 수업에 AI를 여러 방식으로 섞어 보는 실험을 했는데, 결과가 좀 뜻밖이었다.

✕AI 챗봇을 쥐여 줬을 때

  • 답은 정확했다
  • 환각도 없었다
  • 그런데 사람들이 그만뒀다

✓사람이 10분 붙었을 때

  • 늘 정확하지는 않았다
  • 틀리기도 했다
  • 수료 확률 +10%p

학생에게 여기 챗봇 있으니까 이걸로 공부해 보라고 그냥 쥐여 주면, 사람들은 예측 가능하게 그만뒀다고 한다. 배움의 엉뚱한 순간에 AI가 던져지면 오히려 의욕이 꺾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코딩하는 도중에 “지금 온라인에 선생님이 한 분 있는데, 10분쯤 같이 있고 싶대요. 얘기해 볼래요?” 하는 팝업을 띄웠더니, 예를 누른 학생들의 수료 확률이 10%p 올라갔다.

그럼 사람이 더 맞는 말을 해 줬겠거니 싶었는데, 대화 기록을 뒤져 보니 반대였다고 한다. 정확했던 건 AI 쪽이었고 환각도 없었으며, 오히려 사람이 가끔 틀렸다. 그런데도 끝까지 가게 만든 건 사람이었다.

“교육의 왕관 보석은 언제나 동기부여였습니다.”

교수의 설명은 간단했는데, 사람의 손길은 특별하고 그게 동기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는 편이 훨씬 잘 통한다고 했다.

“이 AI의 시대에 네가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걸 포기하지 않을 거야. 기초부터 같이 하자.”

기초가 끝나면 AI로 코딩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이 그 뒤에 붙는다.

여기서 내 회의감이 어디서 왔는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줄곧 실력 문제라고, AI가 나보다 잘하니까 드는 감정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정확한 답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따로 있고,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실력과 상관없이 계속할 이유가 흐려진다. 내가 느낀 건 아마 그쪽이었던 것 같다.

그럼 호기심은 어디서 오나

인터뷰 중간쯤, 교수는 챗봇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숙제를 하나 던진다. 챗봇이 질문에 답은 잘하는데, 어떻게 하면 영감까지 주게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가 학생에게 영감을 주는 방식은 이렇다. 학생이 연구실에 찾아오면 “확률에 대해 진짜 멋진 거 하나 볼래요?” 하면서 뭔가를 보여 준다. 학생이 물어보러 온 질문과는 상관없는 것인데, 학생은 거기서 일종의 애정을 느낀다고 한다.

“학생을 도저히 안 배울 수 없을 만큼 궁금하게 만드는 스위치를 켤 수 있다면, 그날 하루 종일 그 학생이 생각하는 건 내가 던진 문제일 겁니다.”

If that curiosity gets ignited, then I feel like they’ll get there.

지금의 챗봇은 이 호기심에 불을 잘 못 붙인다. 교수 말로는 챗이 먼저 나타나는 법은 없다. 먼저 다가와서 머리 터질 만큼 멋진 거 보여 줄까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인데, 표현이 좀 재밌었다. 교수가 그걸 할 수 있는 건 학생의 맥락을 알기 때문이다. 이 학생이 지금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려는지 아니까, 무엇을 보여 줄지 고를 수 있다.

그가 이걸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자기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나이로비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쿠알라룸푸르로 갔다가 대학 때 미국에 왔고, 교수가 되겠다고 정해 놓고 산 사람도 아니었다. “저는 그냥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어요.” 교양 학점을 채우려고 어쩔 수 없이 들은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선생님이 지난 2주 동안 배운 걸로 각자 가장 멋진 걸 만들어 오라는 과제를 냈고, 신이 나서 정규 수업 외에 40시간을 더 쏟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기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챗봇이 먼저 찾아와 호기심에 불을 붙여 주지 않는다면, 그 불은 내가 붙여야 하는 게 아닐까. AI를 쓰면서 어떻게 하면 호기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배울 수 있을지는 아직 답을 못 찾았다. 요즘 계속 생각하고 있는 질문이다.

Lesson 2. 그럼 왜 아직도 코딩을 배워야 하나

많은 개발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AI가 지금도 나보다 코딩을 잘하는데, 5년 뒤, 10년 뒤에도 내가 개발자로 일할 수 있을까.

교수는 이 질문에 자기 경험 하나로 답한다. 박사과정이던 2011~2012년 무렵, 지금은 동료가 된 사람이 자율주행의 초기 이정표를 세우고 있었다. 차가 스스로 달리는 걸 보면서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럼 택시 기사는? 트럭 기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모두가 생각한 것

  • 택시 기사는?
  • 트럭 기사는?
  • 곧 사라진다

실제로 일어난 일

  • 트럭 운전이라는 직업은 건강한 속도로 늘었다

교수는 언젠가 완전 자율주행의 세상이 온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놀라웠던 건 우리가 거기 닿는 속도를 얼마나 심하게 과대평가하는지였다고 한다. 그가 든 이유는 롱테일이다.

고속도로 위의 상황99% · 늘 똑같이 벌어진다1% · 매번 다르다고속도로에선 늘 뭔가 다른 일이 생기고,값비싼 화물에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
롱테일은 오른쪽 끝의 1%, 매번 다르게 벌어지는 상황이다

“언젠가는 도착합니다. 다만 그 속도를 우리가 엄청나게 과대평가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조금 갸웃했다. 기술 발전은 앞으로 더 빨라질 텐데, 정말 그럴까. 자율주행 때와 지금은 속도 자체가 다른 것 같아서, 이 대목만큼은 아직 교수 말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뒤이어 나온 질문에는 반박할 게 없었다.

“언제 내가 AI에서 뭔가를 얻고 있는 거고, 언제 내 성장을 너무 많이 내준 걸까요?”

When am I actually getting something out of AI, and when have I given away too much of the growth?

교수 자신도 AI로 프로그래밍을 아주 많이 하지만, 마침 아키텍처를 잘 아는 사람이다. 만약 잘 몰랐다면, AI가 나쁜 결정을 내리기 시작해도 첫 프로토타입에서는 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5주쯤 지나 학생들이 실제로 쓰다가 이상한 버그를 만나기 시작할 때에야 문제가 드러나고, 구조를 모르니 그때는 도와줄 수도 없다.

읽다가 좀 뜨끔했다. 나도 AI에 많은 걸 맡기면서 스스로 문제를 푸는 일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교수가 붙이는 조건도 바로 그 지점이다. 쓰면서 내가 AI와 나란히 자라고 있는지를 스스로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편해진 만큼 나도 같이 크고 있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AI가 다 해 주는데 왜 공부해?

누가 나한테 이렇게 묻는다면, 이제는 문제를 풀 줄 알려면 오히려 기본기가 더 필요하다고 답할 것 같다. 교수도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일을 두 조각으로 나눈다.

✓문제 해결: 내가 자라야 하는 곳

큰 문제를 작게 쪼개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잇고, 무엇을 어떤 구조로 놓을지 정하는 일.

문법: AI가 아주 잘하게 된다

명령어, API 이름, 표기 규칙. 외워 두던 것들.

“AI는 문법만큼은 정말 정말 잘하게 될 겁니다.”

넘겨도 되는 건 문법 쪽이다. 문제 해결까지 넘기면 5주 뒤의 그 이상한 버그 앞에서 손을 쓸 수 없다.

그가 덧붙인 이유 하나가 오래 남았다. 코딩은 즉각적이고 반증 가능한 피드백을 준다는 것이다. 논리가 틀리면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으니, 틀린 걸 눈으로 보고 금방 고쳐 볼 수 있다. 인생의 다른 문제들은 피드백이 너무 늦게 돌아와서 잘하게 되는 연습 자체가 어렵다. 코딩이 문제 해결을 연습하기에 특별히 좋은 이유다.

하나 더 뜻밖이었던 건, 그가 운영하는 수업의 수강 등록이 커서와 클로드 코드가 나온 뒤로 두 배가 됐다는 사실이다. AI가 코딩을 하게 되면 배우려는 사람이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늘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요즘 내가 많이 생각하는 건 이쪽이다. 앞으로는 개발 실력보다, 내가 맡은 서비스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객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도와줄 핵심 기능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 말이다.

교수도 거의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져서 이제는 고등학생 둘이서도 꽤 인상적인 코드베이스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고 나면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풀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인지 아는 데는 진짜 예술이 있습니다.”

There is a real art form to knowing what is a valuable problem to solve.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주니어가 그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무엇을 만들 가치가 있는지, 사용자는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능이 그들의 문제를 실제로 진전시키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것과 사람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 사이를 잇는 능력은 언제나 결정적인 고차 기술이었습니다. 제가 주니어 엔지니어라면 시니어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I wouldn’t wait till I was a senior engineer.

인터뷰 마지막 말도 같은 방향이었다. 최고의 엔지니어는 코드를 다 아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현실의 사람 문제를 앱의 세계로, 데이터 사이언스의 세계로, 연구의 세계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일 거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 능력을 AI와 대화하면서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코드를 짜 달라고 하는 대신, 사용자의 문제를 같이 뜯어보는 상대로 쓰는 법 같은 것이다. 아직 공부해 나가는 중이라 정리된 답은 없다.

참고할 만한 방법은 하나 있었다. 교수가 자기라면 이렇게 하겠다며 든 방법인데, 클로드 코드로 프로토타입을 많이 만들고 “이걸 만들면서 네가 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전부 나한테 가르쳐 줘”라고 시키기를 반복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 중요한 개념인지 스스로 알아내게 된다고 했다. 나에게는 일을 넘기지 말라는 말보다, 넘긴 것을 다시 회수하라는 말로 들렸다.

Lesson 3. 가장 의욕을 잃는 사람은 너무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살짝 들었다.

“이 AI의 시기에 가장 길을 잃고 가장 의욕을 잃은 사람들은, 때때로 그걸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people I’ve seen get most lost and most demotivated are sometimes the ones who are overthinking it.

교수에게는 AI를 쓰면서 문제를 풀고 놀라운 것들을 배우며 아주 잘 지내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학생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사실 저는 그 생각을 안 해요. AI의 미래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잘 지낼 수 있어요.”

교수는 이 답 앞에서 멈춰 섰다. 자기는 AI에 대해 하루에 열 번은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 학생에게는 “아니요, 저는 그냥 호기심을 갖고 배울래요”라는 단순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이 인터뷰에서 이 문장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맞는 말처럼 들렸다. 그냥 호기심을 갖고 배울래.

돌아보면 나도 5년 뒤에 개발자가 어떻게 될지, AI가 어디까지 갈지, 내가 뭘 잘하는지 같은 걸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성실함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예측이라는 게 원래 잘 맞지 않는 거라면, 더 오래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지도 않을 테니까.

그날 이후로 교수는 하루를 하나의 공리로 시작한다고 한다. 다음 세대가 더 똑똑해지길 왜 바라는지는 묻지 않고 그냥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이걸 원하고, 그걸 향해 일하겠다.” 그가 기초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똑똑해질 거라고 전제하면, 기초를 건너뛸 방법이 없어진다. 계산기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이 여전히 곱셈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중요한 건 곱셈이라는 개념이지 13 곱하기 7을 빨리 하는 게 아니니, 무엇에 집중할지는 더 세련되게 고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붙잡은 것

교수가 AI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 이건 도구이고, 인간을 곱할 거라는 것이다.

환자를 아끼는 의사 × AI=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많이학생을 아끼는 교사 × AI= 학생과 더 멀리 간다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라면,결과를 정하는 건 곱해지는 내 쪽이다마지막 두 줄은 그의 말에 내가 붙인 생각이다
같은 × AI라도 앞에 선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내가 붙잡은 건 곱셈이라는 말이었다. 더하기라면 내가 어떻든 도구만큼은 늘어나겠지만, 곱하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서 곱해지는 내 쪽이 결과를 정하게 된다. 그렇게 놓고 보니 내가 AI보다 잘하는 게 뭐냐는 질문은 처음부터 방향이 반대였던 것 같다. 도구가 세질수록 오히려 내 쪽이 더 중요해지니까.

교수가 마지막에 남긴 당부도 결국 만들라는 것이었다. “가서 뭔가 만드세요. 사람들이 쓰는 걸 만들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걸 만드세요.” 그렇게 만드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코딩도 문제 해결도 잘하게 될 기회가 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말로 인터뷰를 닫았다.

“크리스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마세요.”

Lesson 1에서 학생에게 해 준다던 말을 마지막에 화면 앞의 사람에게 돌려준 셈이다.

물론 아직 다 정리된 건 아니어서,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교수와 생각이 조금 다르고, 호기심을 어떻게 채워 갈지도 계속 찾고 있다.

그래도 하나는 정했는데, 계속해서 더 나은 개발자, 더 실력 있는 개발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걸 왜 원하는지는 이제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두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쪽이 낫겠다 싶다.

참고 자료

GitHub에서 고치기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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